2004년 9월 24일 금요일

카사노바 다시보기 - 0. 들어가면서

[카사노바 다시보기] 불우한 천재서 '욕망의 순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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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편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카사노바(본명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1798).

 

카사노바하면 우리는 성과 쾌락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이러한 이미지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카사노바는 분명 수많은 여인의 체취를 탐닉한 감각주의자였지만 그저 단순한 바람둥이는 결코 아니었다.

 

카사노바의 삶의 색깔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18세에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였으며, 자유와 평등의 철학을 추구했던 계몽주의자였고, 프랑스 혁명을 앞둔 격변기에 유럽을 누비면서 자유와 평등을 전파한 메신저였다. 

 

또한 40여권의 저서를 남긴 박식하고 위대한 저술가였으며, 예술과 풍류를 즐긴 낭만주의자였고, 탁월한 벤처사업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카사노바의 인생 여정을 관통한 것은 자유였다.

 

자유의 날개를 달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카사노바. 그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 보는 기획시리즈를 주 1회 마련한다. 고향 베니스로부터 젊음을 불태웠던 로마와 파리, 말년을 보냈던 체코 보헤미아까지 그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카사노바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서양고서를 수집하면서 유럽 문화에 심취해 온 김준목씨(39·서양고서전문사이트 ‘안띠꾸스’ 대표).

 

김씨는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 유럽 현지를 직접 찾아 카사노바의 흔적과 그 주변 이야기, 각종 관련 자료 등을 심층 취재했다. 김씨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카사노바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고 우리 삶의 영원한 화두인 자유와 낭만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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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일보에 2001년도에 연재된 글을 블로그에 맞게 재편집한 글입니다.

출처 :http://www.donga.com/fbin/output?code=j_s&n=200105200300&curlis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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