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아르노 강변을 걷던 중 발견한스마트(SMART)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스마트를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놀라운 건 그게 아니라
보이시죠? 주차해놓은 작태가...
짧아서 아름다운 차..
스마트.. 좁은 길에서도 오토바이처럼 직각으로 주차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양사이드에는 유서깊은 카페 2곳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왼쪽편에 자리잡은 카페<플로리안(Florian)>...
16세기말 터키로부터 베네치아로 커피가 처음 전해지고 약 100년 뒤,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플로리안>이 지금 있는 바로 그자리에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이름은
<베네치아 트리온판테 (승리를 자랑하는 베네치아)> 였다지요.
그러다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때부터 이름을<플로리안>으로 바꿨다네요.
그 이후, 플로리안은 저항운동의 산실이 되었고,
광장 맞은편의 '콰드리' 같은 카페가 독일식 이름인 '카페하우스' 라고
간판을 바꾼것과는 대조적으로 플로리안은 저항을 계속하였다네요.
<플로리안>이 이것만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죠.
괴테, 나폴레옹, 스탕달, 바이런, 바그너, 디킨즈,
모네, 마네, 하이네, 니체, 릴케, 카사노바...
이 모든 예술가, 작가 들의 아지트처럼 사랑받았던 곳이
바로<플로리안>입니다.
카사노바가 '피옴비 감옥'을 탈출해서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이 곳<플로리안>이라죠.
<플로리안>의 에스프레소 맛을 잊지 못해..
그러한 전율이 느껴지는(?)
카페 플로리안을 찾았습니다.
산마르코 광장을 헤집고 다니느라
노곤한 다리를 쉬이고,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괴테처럼, 카사노바처럼 이곳<플로리안>을 찾았습니다.
계단 쪽에 자리를 잡고,
이름 기억못하는 아이스크림과,
이태리산 맥주 한병을 시켰지요.
캬아~ 온몸의 피곤이 싸악~ 가시더군요..
가격은 꽤 비쌌지만...
현재 플로리안의 모습은 창업당시 모습 그대로 입니다.
1976년에 새단장을 하면서 창업당시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했다고 하네요.
이때 베네치아는 다음과 같은 플로리안 찬가를 노래하였답니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플로리안은 그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그러므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모카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위의 이미지는 타로카드랍니다.
네이버의 月下淵이란 분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yueing/80002489715)
정확하진 않지만카사노바가 탈출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카사노바가 탈출을? 어디서?
1755년카사노바가 30살이던 때,
카사노바의 이단적인 지식과 파격적인 행동,
그리고 외국의 대사들이나 정부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는 등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베네치아 정부로부터 찍혀(?)
피옴비 감옥에 수감되게 되었죠.
카사노바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타인에게 잘못한 적도 없으며, 사회안정도 위협한 적이 없고...
다만, 종교재판관의 애인과 자주 만났던 일 밖에 없다고 하네요.
암튼,카사노바는 그렇게 피옴비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피옴비 감옥이란 곳은 베네치아의 정치범 들을 주로 수감하던 곳으로
지붕이 납으로 되어 있어 여름에는 아주 덥고, 겨울에는 아주 추운
참으로 열악한 곳이죠.
악명높은 이 피옴비 감옥에서 역사상 탈출한 사람은
카사노바가 유일하답니다.
카사노바는 자신이 이곳에 도저히 있을 수 없음을 알았고,
쇠꼬챙이로 바닥을 뚫고 탈출하려고 하였지만
들통이 나서 맨 꼭대기 방으로 옮겨집니다.
카사노바는 포기하지 않고, 그당시 죄수들의 음식이었던
마카로니를 이용해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18세기의 마카로니란 밀가루와 계란으로 반죽을 하고 얆게 펴서
정사각형으로 자른 후 프라이팬에 뜨겁게 익혀서 먹는 요리였는데,
카사노바는 쇠꼬챙이를 성경책을 파서 그 안에 숨기고,
뜨거운 마카로니를 성경책 위에 얹어서(그니까 성경책은 받침대인거죠)
옆방의 죄수에게 전달해서 대신 천정을 파게 했다네요.
(꼭대기방이니 천정을 파야겠죠?)
간수는 뜨거운 마카로니를 전해주기 위해 성경책을 이용한거니
아무 의심없이 대신 받아서 옆방에 전해주었고,
결국 간수를 이용해카사노바는 탈출에 성공한거죠.
그리고선 아마도 저 타로카드의 그림처럼
줄을 타고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겠죠.
그가 감옥을 나오면서 남긴 유명한 메모가 있죠.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이제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소."
카사노바.
그는 한낮 호색한이 아니라
그 시대의지식인이며,엘리트이며,성직자이자,음악가이며,
의사,법학가,요리의 대가,패션의 선두주자,사업가,문학가였습니다.
그에 대한 얘기는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죠..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뒤 작은 운하가 있고 그 옆에는 피옴비 감옥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왼쪽이두칼레 궁전, 오른쪽이피옴비 감옥이죠.
그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건?
바로탄식의 다리(한탄의 다리) 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다리이죠.
두칼레 궁전의 2층 대평의회실에서 재판을 하여 선고를 받은
죄수들은 저 다리를 건너 피옴비 감옥에 수감되었답니다.
그런데 피옴비 감옥이란데가 한번 들어가면
죽지 않고선 다시 나올 수 없는 감옥이라네요.
그래서 죄수들은 저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의 작은 창(2개 보이시죠?)을 통해
바깥을 마지막으로 보고선 탄식을 했다는...
그래서 아름다운 다리 이름이 탄식의 다리라네요.
그리고 하나 더..
그 지옥같은 피옴비 감옥을 탈출한 사람이 역사상 단 한명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카/사/노/바 !!
그 얘긴 다음에 또 하도록 하죠.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들을 헤집고 다니다 우연히 저 살찐 사내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죠.
아는 분을 통해 처음 알게된 바로 그BOTERO..
그의 작품이 걸려있는 화랑을 발견한거죠.
(위치가 어디냐고 묻진 마시길..)
BOTERO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본 바를 알려드리면,
1932년에 콜롬비아에서 태어났구요.
스페인 마드리드와 파리를 거쳐,
1952년 10월에 이태리 피렌체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죠.
이때 그의 화풍이 결정되지 않았나 싶네요.
현재는 뉴욕에 살고 있답니다.
그러고보니 베네치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군요.
그래도 알고 있는 그림을 낯선 곳에서 마주친 느낌은 뭐랄까.. 반갑더군요!
이태리의 웬만한 화장실들은 다 유료랍니다.
보통 0.5유로 정도의 돈을 받지요.
위의 사진은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 입구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0.5유로)
저렇게 생긴 게이트에 동전을 넣고 지하철처럼 밀고 들어갑니다.
째려보고 있는 저 아가씨는 동전바꿔주는 역할..
뭐 화장실까정 찍고 그런디야.. 라고 한마디 할 듯..
이 사진은피렌체 기차역(산타노벨라역)에 있는 화장실 입구입니다.
역시 동전을 넣고 들어가지요.
여긴 0.75 유로정도 했던 것 같네요.
우리돈으로 1000원 정도 되나요. 무지하게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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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에 가실 분을 위해 팁 하나 알려드리면,
카페 플로리안에 가시면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냥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바로 올라가시면
화장실이 나오죠. 뭐라 안하던데요.
위 사진은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있는 두칼레 궁전의 모습이랍니다.
아름답죠? ^^
그런데 뭔가 이상한 걸 발견 못하셨나요?
2층의 기둥들을 보시면 가운데 쪽에 2개만붉은 색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왜일까...
예전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저 기둥에 죄인들의 목을 잘라 걸어두었다고 하더군요.
국민들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된다... 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게지요.
그래서 저 두 기둥만 피로 물들어 붉은 빛이 빠지질 않는다고 하네요.